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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간이 멈춰버린 버려진 도시 `오르차`

아이린12 2009. 2. 22. 04:27

 오르차에 가기위해선 아그라에서 기차를 타고 '잔시'라는 곳에서 내려서 오토릭샤나 템포를 타고서 한시간 정도 들어가야 한다.

 잔시역에 내리자 정해진 수순대로 삐끼가 붙는다. 역시나 조사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부르길래 콧방귀 한번 뀌고 역앞에 모여있는 오토릭샤 기사들에게 흥정을 붙였다. 모두 담함하고 있는 가운데 그 한명이 살짝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타라길래 냉큼 탔더니 다른 오토릭샤 기사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커져버리고 말았다. 담합까지 모잘라 그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싸우다니 참 어리숙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정직하게 일한다면 분명 더 큰 성과가 있을텐데 오로지 외국 여행자들 어떻게 한번 등쳐서 한건 해볼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기는 커녕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하루종일 그렇게 역앞에 모여 있는 것이다.

결국 오르차에 가는 다른 영국 여행자의 오토릭샤에 합승해서 떠나버렸으니 그들은 닭 �i던 멍멍이 신세가 되버린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오르차는 듣던데로 아무것도 있을것 같지 않은 곳에 제법 큰 중세도시가 그중에서도 성들이 그대로 버련진채 있는 이상한 도시였다.

 그 이유가 역모를 꾀한 왕자가 이곳 오르차로 도망왔는데 이곳의 성주가 고민끝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다. 왕자를 3년간 호의호식하며 숨겨 주었는데 마침내 왕이 죽고 숨겨주었던 왕자가 왕위에 오른것이다. 바로 인생역전 로또당첨, 그렇게 왕위에 오른 왕자가 신세를 거하게 갚았으니 그렇게 번성하게된 도시가 바로 오르차이다. 하지만 이 왕이 물러나고 다시 위기가 오게되고 오르차 성주는 반란을 꾀하다가 마침내 멸망의 길에 이르게 되었고 그 후 오르차는 잊혀진 도시가 되어 버렸다.

 한참 번성할때 무려 55개의 궁과 성이 지어졌으니 한때이지만 오르차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수 있다. 그래서 오르차는 그 도시 자체가 유적지이다. 마을을 구경하다 보면 커다란 성과 궁 그리고 사원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라즈 마할, 쉬시 마할, 제항기르 마할, 라이 프라빈 마할, 팔키마할 등 성이 많지만 그리 넓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만에 볼 수 있다. 또 하루만에 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통합 입장권인데 하루 250루피면 모든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의 규모는 꽤 크며 중심부에는 서너개의 성과 궁이 함께 위치해 있다.

 

 

 도착한 첫날은 그냥 밖에서 구경하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해가 지고 마을의 가게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수수한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이드북에 나온 탈리집. 탈리는 쌀밥과 짜파티에 몇가지 카레와 샐러드를 곁들어 먹는 일반적인 인도 식단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의 경우 손으로 모두 먹지만 외국인 여행자라 스픈과 포크가 제공된듯 하다.

하지만 역시나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많이 남기고 말았다.

 

 

오르차 시장 입구의 모습.

 

 

시장 안쪽 광장엔 장터마냥 좌판이 많이 벌어져 있다.

 

 

오르차에서 유명한 '포트 뷰 게스트하우스'. 가이드북에 나온 가격보다 비쌌지만 그런데로 깨끗해보여 이용하게 되었다. 체크 아웃 할때 흥정했던 가격보다 돈을 더 요구하는 정직하지 못한 지배인때문에 뒤끝이 좋지 못했다. 항상 영수증을 챙기고 흥정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곳.

 

 

가이드 북에 소개된 원빈 식당. 이곳을 이용한 한국 여행자가 이 곳을 운영한는 형제중 첫째에게 원빈이라고 애칭을 붙여줘 식당 이름이 원빈 식당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은 역시 짜이 한잔으로 시작한다.

 

 

 왼쪽부터 원빈, 공유, 장동건.

 위생? 고급 호텔이 아니라면 인도에서 첫번째로 포기해야할게 바로 위생이다. 마치 소꿉 놀이같은 그들의 식당에서 그래도 제법 먹을 만한 음식이 나온다. 가격은 정말 저렴한게 둘이 한끼 먹어도 이천원이 넘기가 힘들다. 이렇게 팔고도 남을까 싶은 가격과 나름 정성스럽게 조리하는 그들을 보면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밖에 없다.  

 

 

 가이드북에는 하루 입장료가 30루피라고 나와 있는데 가격이 무려 250루피로 나와있다. 물어보니 3개월 전쯤에 올랐다고 한다. 입장료 뿐만 아니라 숙박비도 불과 2-3년 전에 비해 열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이제 제법 여행자들이 찾아온다는걸 아는것이다. 그런 곳일수록 저렇게 외국인과 인도인과의 가격차가 심하며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나 과일등도 외국인에게는 별도의 가격을 받는다고 한다.  아직까진 다른곳에 비해 순박한 마을 분위기 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위기는 상업적으로 바뀌어 가고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건 어떻게 보면 또다른 이기주의가 아닐까?

 

 

 이렇게 큰 규머의 유적에 관리인도 고작 한둘이며 하는일도 간단한 청소와 입장권 확인 정도이다. 입구에선 마을 청년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공짜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접근 하지만 역시나 돈을 요구한다. 이런 고맙지 않은 친절에 그냥 "I can't spek english"로 거절했다. 영어를 못한다는데 가이드를 어떻게 받으란 말인가.

 

 

 공연이 열였다는 무대가 된곳이며 위에 보이는 발코니에서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몇백년된 벽화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많은 전쟁으로 유적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상 잘 만나 많은 유적을 물려 받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도가 그저 안타까울수 밖에 없다.

 

 

 

 그저 여유있게 성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예전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면 사원과 성들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인도엔 성을 개조한 호텔이 많이 있는데 이곳 오르차는 아직 덜 알려진 곳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4만원을 제시했다. 순간 고민좀 했지만 그냥 기념사진 한장 찍고 나왔다. 나름 멋진 분위기의 호텔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후회가 된다.  

 

 

마을을 둘러보다 조그만 미술관을 발견했는데 전기가 귀한 나라인데다 관람객이 없어서인지 불이 꺼져 있었다. 잠시 인기척을 했더니 관리인이 불을 켜고 그림에 대한 안내를 간단히 해주었다.

 

 

길거리에 마련된 이발소. 인도에서 한번 이발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인도 어린이들을 보고 인사를 한다음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천진 난만한 인상을 가진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에 돈을 요구해서 난감했다. 물론 쌩 깠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위치한 궁전들.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커다란 말벌 통을 보고 혼비백산 내려와야 했다. 

 

 

 궁 옆에 위치한 하트모양의 �鍮瑛� 인상적이었다.

 

 

 오르차에서 유명한 음식점. 어느 여행자인지 모르지만 이 식당이 굉장히 맘에 들었나 보다.

 직접 만든 김치와 매운 양념으로 한국과 비슷한 맛을 가진 라면 그리고 볶은밥이 맛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독수리.

 

 

 성 위에서 바라본 오르차의 일몰.

 

 

 그렇게 오르차 여행을 마치고 다시 잔시로 나와 드디어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 열차에 올랐다.

 이번엔 3등칸에 해당하는 슬리퍼 칸을 이용했는데 에어컨이 나오는 2등칸 가격의 1/3 이다. 아직 덥지 않은 날씨 덕에 이용하는데 무리가 없었으나 2등칸에서 주던 시트와 담요는 제공되지 않고 도착역마다 안내가 없어 자는동안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인도의 열차는 도착역 안내가 없기 때문에 도착 시간전에 미리 주위 인도 사람에게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준다. 잘 모르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상의해서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출처 : 행복하기 위한 조건 하나
글쓴이 : 김태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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